나가수 단상 : 감탄하는 기계의 추억

2011/06/09 04:09
나가수 4회.  
노래는 외마디 감탄으로 봉인된다.
물론 노래는 기억의 변두리에 방치된 추억을 불러온다.
하지만 결국 그 노래들은 이야기가 되지는 못한 채 숫자로 수렴한다.

"넌 몇 등이니?"
"넌 어느 학교 나왔니?"
우리 뼛 속까지 새겨진 등수 유전자.

춤추는 아름다운 떼가수들에 둘러싸여 마음 깊이 숨겨진 그 먼 추억의 목소리로 아, 하고 감탄하는 것도 참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슬픈 짐승들... 그 슬픈 짐승들은 이제 겨우 아, 하고 한탄인 듯 감탄인 듯 토해낸다.

아, 좋다
아, 대단하다
아, 라는 감탄사는 물론 어떤 이야기보다 풍요롭게 더 많은 걸 설명할 때도 있다...  

서바이벌에 최적화된 국가.
서바이벌 vs 서바이벌.
노조에게 20억 민소송내는 진짜 서바이벌을 위장하는 대한민국의 슬픈 서바이벌 엔터테인먼트.

여기는 그 감동으로 멍해진 표정이 이야기를 대신하는 세계다.
자기 이야기는 끝내 꺼내오지 못한 채 훌륭한 관객으로 끝끝내 남아 아, 하고 감탄하는 세계.
우리는 감탄하는 기계다!

김건모 무대.
"떨리는 손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이제 노래는 감동+수능+최종면접이 뒤섞인 완벽한 한국형이 된다

한편, 3040의 문화적 소외와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
"니들이 노래를 알아?"

전화투표 전송료 별도.
음악은 멜론과 함께~
객석, 은 mb시대의 엔터테인먼트 국민의례 같은 느낌, 을 주기도 한다.

클로즈업, 얼굴 표정이 담고 있는 그 무수히 많은 진실과 이야기들.
아직 못봤지만, 트레일러 화면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20세기 최고의 다큐 쇼아(Shoah. 1985). 저널리스트 끌로드 란쯔만(Claude Lanzmann)이 홀로코스트를 증명하기 위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았던, 그 렌즈가 바라본 표정들의 진실, 그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한 말의 진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HOAH (Claude Lanzmann) 의 한 장면

나가수는 21세기 대한민국, 향유할 노래 하나 없이, 추억마저 이야기하는 방법을 빼앗기고 있는 소시민의 삭막함을 증거하는, 그런 대중문화의 풍경을 증거하는 다큐다. 나가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잘 편집된 그 훌륭한 가수들의 노래가 아니라, 객석의 얼굴들, 그 표정이 말하고 싶어하는 어떤 추억, 어떤 진실이다. 나가수의 주인공은 그 말 잊은 관객들, 그 감격하는 표정, 자기 말을 잃어버린 이 슬픈 자본주의 기계들, 그러니까 당신, 당신의 형제부모들, 그러니까 우리들이다, 우리는 그 표정에 완전히 감정이입된 채로 이 알 수 없는 감정들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그 표정은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추억을, 어떤 진실을 더듬거린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 더듬거림이 뭔지 모르겠어....  


추.
1. 아주 오래전에 썼던 글인데, 뻘글 같아 잊고 있다가, 하이커와 심야통화하다 떠올라서...
2. IMDB에 있는 '쇼아' 트레일러 : 이걸 보니 정말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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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나가수와 소셜미디어 대화의 공통점은? 실력보다 진심!

    Tracked from 미도리의 온라인 브랜딩 2011/10/04 22:48 del.

    일요일이 되면 우리 가족은 나가수(나는 가수다)를 보기 위해 나들이에서 일찍 돌아올 정도로 나가수의 팬이다. 아이돌 댄스 가수들의 알수 없는 노래로 가득한 음악 캠프는 안본지 10년은 된 듯하고, 제대로 된 가수의 노래는 유희열의 프로포즈나 음악여행 라라라와 같은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서 밖에 접할 수 없었는데, 주말 예능 황금 시간대에 실력파 가수들을 7명이나 만난다는 설레임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었다. 이제 나가수는 이제 1박 2일까지 제치고 일요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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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노씨 2011/06/09 11:43

    * 사소한 추고 : 비문, 중복표현 등등

    perm. |  mod/del. |  reply.
  2. 민노씨 2011/06/09 11:48

    * 약간 더 추고 : 이상한 문장 흐름을 약간 덜 이상하게 수정.

    perm. |  mod/del. |  reply.
  3. 멀리있는빛 2011/06/09 11:52

    <쇼아>를 부분적으로만 봤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이발사 Bomba라는 아저씨... 유튜브에선 두 장면으로 나뉘어있네요.

    http://youtu.be/sgCg4rXUKzE (이 장면을 본 후)

    http://youtu.be/Nsk2GAv9YhM (이 장면을 보면...)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1/06/09 12:16

      트위터에서만 가끔 뵈었는데, 이렇게 블로그로 찾아주시니 참 반갑습니다. : )

      멀빛님 덕분에 다시 유튜브를 훑어보게되었는데 어떤 분께서 무려 59개로 영화를 나눠서 올리신 게 있네요...;;;
      영화가 워낙 길기도 길지만, 59개를 나눠서 올리다니..;;
      저작권문제는 별론으로 그 분도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링크 소개 고맙습니다.

  4. windburial 2011/06/09 12:56

    '쇼아' 전체를 두 번 보았는데, 관람은 별로 추천하진 않습니다. 유태인 학살을 재현하는 가장 공포스러운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전체를 한 번에 몰아 보면, 역사의 죄악 앞에 몸부림치는 관객이 탄생합니다. 그게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죠.
    이브라힘 봄바가 울며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할 때 감독은 말합니다. '아니에요, 해야만 해요.' 비슷한 케이스로, 전직 SS를 유도심문해서 '하루에 만이천 명밖에 죽일 수 없었다고요, 이해해요?'라는 말을 끌어내는 것도 그런 케이스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영화고, 조금만 손을 놓치면, 후반부의 시오니즘적인 함의에 쓸려가 버리는 것도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1/06/10 00:38

      인상적이고, 큰 참조가 되는 논평이시네요.
      왠지 익숙한 듯, 약간 낯설기도 한 닉네임이신데...
      혹시라도 제가 건망증이라면 일깨워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블로그 글들도 참 잘 읽었습니다.
      특히 김현진 글 인상적더라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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