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은 점점 더 화려하게 빛나는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온통 빛나는 것들 천지인데 우리는 점점 더 외롭고, 우리는 점점 더 쓸쓸하다고 느낍니다. 보이지 않는 억압장치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억압장치들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근엄한 제도의 이름을 하기도 합니다. 때론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의 향기를 뿜어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무지불식간에, 놀랍게도, 우리는 그 억압을 원합니다. 정체는 힘입니다. 힘의 법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응하면 순응할수록 우리는 안락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자발적인 노예가 되기를 경쟁적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진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객관화하고, 우리를 다시 관계 속에서 입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을, 그 빛과 그림자 모두를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 관계속에서,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디어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쫓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TV를 비롯한 기성 미디어에 비치는 누군가의 욕망을 모방하고, 그것을 흉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웹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드디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누군가를 그저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드라마를 써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욕망과 소망을, 거짓과 진실을 대화 속에서 만들어갈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억압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감옥의 달콤함은 여전히 우리를 기꺼이 죄수가 되도록 유혹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서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 관계의 풍경들을 물어보지 않고, 지배를, 복종을, 이윤과 배타적 욕망을 물어봅니다.

물론 우리들은 속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관계 속에서 나를, 당신을, 우리를 질문하는 물음표 속에 던져집니다. 그 관계는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입니다. 그 희망이 꺼지지 않도록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합니다. 블로거들은 수다장이들이들입니다. 그들은 말의 힘을 믿고, 대화의 위대함을 믿으며, 관계의 소중함을 붙잡고 있는 철부지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철부지들이 좋습니다. 말의 힘이 바로 서는 날이 오면 그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라는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헬렌 헌트에게 말합니다. 이기적이고, 편협하기 짝이 없던 잭이 헬렌에게 고백합니다. '당신은 나를 좀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저에게 블로그는, 웹에서 관계하는 제 동료 블로거들은 저의 욕망을 부추기기도 하고, 저의 소망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저를 욕심장이로 만들기도 하고, 저를 부끄럽게 하기도 합니다. 그 친구들이 저를 좀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그 작은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기꺼이 한 쪽 눈을 감고 스스로 억압당하길 원하는 새로운 미디어 디스토피아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아직 우리의 영토는 작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배타적인 투쟁과 싸움이 아니라, 대화의 힘으로, 관계의 힘으로, 그리고 그 대화와 관계가 그저 놀이가 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우리의 영토를 넓혀갈 것으로 저는 기대합니다. 저는 도덕적인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숭고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심과 이타심을 공존시킬 수 있는, 그렇게 저 거대한 돈과 욕망의 물결에 대항할 수 있는 놀이로서의 문화, 축제로서의 관계망, 새로운 공동체를 실험해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그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요. 준비상황이 어수선하고, 이상하게 가지고 간 메모리 스틱에 문제가 생겨서...인터넷 주인찾기 시즌 1. 인터넷 실명제의 여는 말은 즉흥적으로,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이야기들로 했습니다. ㅜ.ㅜ;;; 아무튼 어제는 정말 재밌고, 신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런 시간을 좀더 많이 좀더 많이 여러분들과 함께 더불어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게 꿈이라면, 그 꿈들이 일상적인 현실이 되도록 그 고민과 놀이가 결합된 놀이터가 아주 아주 익숙한 것이 되도록 힘을 키워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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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실명제3

    Tracked from ego+ing 2010/05/17 08:36 del.

    일전에 쓴 글에서 컨텐츠는 다시 컨텐츠를 담는 컨테이너와 컨테이너에 실리는 컨텐츠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컨텐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내용물인 컨텐츠지만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컨테이너라고 그랬다. 일반적으로 사법적 관점에서 폭력이란 컨텐츠인 악의와 그것이 기록되는 컨테이너인 상처로 이루어져 있다. 죄질을 결정하는 것은 악의지만 형량을 결정하는 것은 컨테이너인 부상의 정도다. 그런 점에서 욕설은 누구나 인정하는 폭력임에도 제대로된 사...

  2. Subject : 실명제2

    Tracked from ego+ing 2010/05/17 08:36 del.

    전뇌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electric brain이라고 쓴다. 기계가 잘하는 인지능력은 기계에게 위임하고 인간은 사고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뇌에 칩을 박고 센서를 설치하는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전뇌화가 끔찍한 것이지만, 끔찍한 것들은 변한다. 이를테면 요즘 사람들의 손바닥은 스마트폰으로 강점되어 있다. 여러사람이 모여있는데 아무말도 않고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는 이 모습을 10년전의 우리가 목격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또 10년 뒤에도...

  3. Subject : 실명제

    Tracked from ego+ing 2010/05/17 08:36 del.

    웃기는 제도다. 이름과 주민번호 같이 이미 공개된 정보를 이용해 사람을 식별하는 것은 너무 허접해서 인증도 아니고, 이 제도를 통해서 악플이나 허위사실이 줄어들었다는 검증된 연구결과도 없고, 국내기업에게만 적용되는 역차별이며,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은 인증이 되지 않기 때문에 회원가입도 할 수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은 물론이고 항문까지 막힐지경이다. 문제는 실명제를 시행하거나 말거나 악플이나 허위사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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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L 2010/05/16 21:16

    '좀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 준다'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블로그를 하는 이유에는 개인적인 일기나 반성, 생각의 정리, 그리고 약간의 과시욕 같은 것도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결국 인용하신 것처럼,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매번 글을 읽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댓글 남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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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5/17 12:53

      처음으로 남긴 댓글이 무플을 방지하는 고마운 댓글이네요. :)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

  2. 뗏목지기™ 2010/05/17 12:47

    참가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여러모로 좋은 행사가 되었던 듯 하네요. 저는 블로그와 트윗을 하면서 저 자신을 좀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런 의미들을 제한하지 않는 환경들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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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5/17 17:35

      그러게요.
      행사 당일에도 참석하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죠.
      뗏목지기님께서 그동안 블로깅/댓글링(?)을 통해 이번 행사의 취지를 알리는데 기여해주신 점에 대해선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앞으로는 좀더 적극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3. 비밀방문자 2010/05/17 12:5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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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5/17 17:37

      아이폰에 저장은 해갔는데...ㅜ.ㅜ;;;
      준비상황이 어수선해서리... 다음엔 이런 실수가 없도록 꼼꼼히!! ㅎㅎ
      암튼 너무 너무 정말 정말 노고가 크셨다능...!!

  4. 써머즈 2010/05/19 16:58

    아... 결국 씁쓸한 코미디가 되어 버린 건가요. ㅠ.ㅠ
    아카이빙에 민노씨의 원래 발제문도 함께 병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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