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를 위하여: 지붕킥 엔딩 단상

2010/03/22 15:36
#. 지상파에서 방영된 인기 시트콤이라는 특성상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연예저널들에서 이미 독후감식 기사들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안봐도 비디오라서리...). 스포일러의 불안을 느끼시는 분들은 이 글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예술의 종국에는 선이 악에 대해 승리한다고 약속한다면, 그러한 약속은 역사적 진실에 의해 반박될 것이다. 현실에 있어 승리하는 것은 악이고, 그곳에는 단지 어떤 사람이 잠시 동안만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 선의 외로운 섬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이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만든 약속을 거부한다. 그들은 헤피엔드를 거절한다.(52)

비극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고, 비극의 신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다. 기쁨은 슬픔보다는 빠르게 사라진다. (60)

- H. 마르쿠제, [미학의 차원]('The Aesthetic Dimension', Beacon Press : Boston, 1978), 청하 : 서울, 1983. 중에서


1. "김병욱 미친거 아냐?"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은 슬픔으로 마무리된다. 여느 멜러드라마의 결론이라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이 엔딩은, 그동안 지붕킥을 꾸준히 시청했을 시청자들에게는, 그리고 김병욱PD의 전력을 고려하더라도, 파격적인 결론이다. 지붕킥은 수목 멜러드라마가 아니니까. 이것은 일일시트콤이다. 매일 저녁을 먹고 나서, 혹은 늦은 저녁을 먹으며 그저 하루의 피곤을 웃음과 함께 날려보내는, 가족들과 함께 보는 지상파 시추에이션 코미디다. 지붕킥은 그런 시청자들의 관습적 기대를, 시트콤이 갖는 현실의 수면제로서의 정치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배반한다. 이 결론은 확실히 불편하다.

이 글은 지붕킥의 결론, 그 적극적인 배반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글이다.  

2. 비참한 현실
지붕킥은 세경과 지훈의 마지막 대화로 마무리된다. 좀더 정확히는 세경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세경은 그 고백을 통해 대한민국 현존 질서에 대한 깊은 좌절과 슬픔을 토로한다. 이것은 그동안 김병욱 피디가 보여준 변칙적인 내러티브, 가령 등장인물들의 예기치 못한 죽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민영의 죽음 따위를 떠올려보더라도 대단히 이질적인 풍경이다. 세경의 마지막 고백은 진보적 미디어들의 사회비평 칼럼에서나 읽을 수 있을만한 언어들이다. 그것이 낭만적이고, 슬픈 연애담의 형식으로 포장되고 있더라도, 이것은 시트콤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다. 세경의 고백을 통해 지붕킥의 마지막을 다시 되돌려보자.

#. 공항으로 향하는 지훈의 차 안. 밖에는 비가 거세게 내린다.

세경 : 시간 가기 전에 아저씨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너무 좋아요.

지훈 : 이민갈 이유, 안갈 이유가 반반이었다 그랬지?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뭐야? 아빠랑 셋이 사는거?

세경 : 네. 그리고 신애한테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지훈 : (의외라는 듯, 세경에게 반문하며) 신애?

세경 : 언젠가부터 신애가 자꾸 저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요. 식탐 많던 애가 먹을 것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갈 돈이 없을까봐 걱정하고,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 공항에서 세경을 기다리는 신애와 아빠의 모습이 공항 로비 창가로 보인다.

지훈 : 안가고 싶었던 이유는?

세경 : 검정고시 꼭 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지훈 : 미안하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그게 상처줄려고 한게 아니었는데.

세경 :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이고. 저는 괜찮아요. (...) 그 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이제는 깨달았고.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 좀, 힘이 들긴 들었어요. 아저씨랑 막상 헤어지면, 보고 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에게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말들, 꼭 한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애써 웃음을 짓는다. 차 앞 창을 바라보며) 다 와 가나요?

지훈 : 어.

세경 :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지훈 : 뭐?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다)

세경 :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 지훈이 세경을 바라보며, 흑백톤으로 화면이 멈춘다.

- [지붕 뚫고 하이킥] 126회 중에서

3. 김병욱 시트콤
김병욱은 그동안 대한민국 시트콤의 역사라고 할만한 작품들을 연출해왔다. <순풍산부인과>(1998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년) <똑바로 살아라>(2002년)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년) <거침없이 하이킥>(2006년) 이 그것들이다.

지붕킥의 내러티브는 '순풍 산부인과'나 '똑바로 살아라' 혹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공식을 그대로 확대변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병욱 PD가 그동안 연출했던 시트콤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었다. 우선 이야기의  중심축에는 중산층의 계급적 허위의식을 대변하는 선망적 표지가 등장한다. 산부인과 의사인 오지명(순풍산부인과), 한의사 이순재(거침없이 하이킥), 성공한 중견 연기자 노주현(똑바로 살아라) 등이 그들이다. 이 공식은 지붕킥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데, 지붕킥에서 에피소드의 중심 공간은 음식가공업체 사장인 이순재의 가정이다. 부촌의 상징인 성북동 럭셔리 하우스는 김자옥의 한옥집과 함께 지붕킥의 공간적인 무대가 된다.

더불어 김병욱 시트콤에선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식들을 내부 구성원들에 의해 드러내는 구도를 취하곤 했다. 가부장적 권력자들(이순재, 노주현)은 형식적인 권위만을 인정받고, 실은 가정 구성원에게 철저히 따돌림 당하거나, 무시받는 가짜 권위의 상징으로 표출되곤 했다. 그들은 실력없이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진 자들('하이킥'의 이순재와 '똑바로 살아라'의 노주현)이거나, 내면의 독백으로 자신의 부도덕을 그저 감상적으로 치유하곤 하는 탐욕스런 자린고비('지붕킥'의 이순재)였다. 물론 그들은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용서받고, 충분히 이해할만한 인물들로 그려지긴 했다.

이들 가짜 권위의 짝패로는 흥미롭게도 당찬 여성형이 등장하곤 했는데. 그들은 마치 구시대의 권위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거나, 그 자리를 대신할 존재처럼 묘사되었다. '하이킥'에서는 박해미가 그랬고, '지붕킥'에서 오현경이 그렇다. 다만 하이킥의 박해미가 성취지향적 여성형의 밝은 모습들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구현했다면, 2009년 지붕킥의 오현경은 MB시대의 자장권 아래서 세속화된 주부의 면모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지붕킥]의 거의 모든 인물이 어느 정도는 자신들의 감상적 에피소드들을 통해 구원받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오현경(극중 '이현경')은 끝까지 현실 속의 비정한 리얼리즘을 대변한다.

그녀는 아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투사하고('해리 예능 과외' 에피소드), 학벌주의를 절대적으로 숭상하며('서운대' 에피소드), 남편의 출세를 위해서는 자존심을 팽개치고, 뇌물을 서슴치 않는다(박경림이 등장하는 '내조' 에피소드). 그런 그녀는 극중에서 한번도 반성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정보석과 함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MB시대의 판타지다. 낭만적인 결혼 스토리를 통해 그녀의 감상적인 소녀적 취향이 작은 알리바이처럼 제공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세속적 성공의 판타지일 뿐이다.
 
김병욱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해리를 미워하는 시청자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돈도 없으면서 신애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지금은 누구 편이 많은지 모르겠다. 신애가 분식집에 돈 없어서 잡혀 있는 동안 추가로 순대를 먹는다거나 하는 걸 보며 없는 처지에 주제넘게 뭘 그리 먹느냐고 화를 낸다. 약자에 대한 이지메일 수도 있고 우리 내면의 강퍅함일 수도 있다. 구질구질하게 살면서도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어 하는 근성을 못 참아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지붕킥>은 1980년대적인 이야기다. 80년대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폭력의 시대였다. 우리는 많이 진보한 줄 알았는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경제적인 생존 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사람도 많고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
-  씨네21, [김병욱] “<지붕킥>은 1980년대적인 이야기”

"계급 갈등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회인이니까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순풍산부인과> 때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신애의 ‘장래희망’ 에피소드에 들어있다. 우리 사회는 열린 사회라지만 열린 사회가 아니다. 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신애가 세경이처럼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나. 가진 자(이순재)가 없는 자(세경)에게 절약을 강조하는 에피소드도 우리 사회 지도층의 이야기일 수 있다. 내가 희망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가져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게 <똑바로 살아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보다 더 좋다."
- 한겨레21, 지붕 뚫고 본 세상, 인생은 빵꾸똥꾸

4. 사회비판
지붕킥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계보 속에서 실종되고, 단절된 사회비판 멜러드라마의 전통을 다시 건져 올린다. 주체적인 공장 노동자(음정희)가 회사 홍보팀과 옥씬각씬하는, 지금으로선 정말 상상하기도 어려운 컨셉의 드라마 [도시인](이윤택 각본, 최수종, 배종옥, 음정희 주연)이나, 황인뢰(연출), 주찬옥(각본) 컴비에 의해 시도되었던 여성 중심의 사회비판적 멜러드라마들, 그리고 무엇보다 김운경('서울의 달' '서울 뚝배기' '형' '파랑새는 있다' 등의 각본)이 줄기차게 시도했던, 소외된 도시 빈민들의 생생한 삶과 사랑의 이야기들은 소위 막장 드라마의 득세와 판타지 멜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가식적인 드라마들의 팽창과 함께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막장 복수극과 신데렐라 판타지, 그리고 꽃남류의 노골적인 무뇌아 드라마들이 채워나갔다.

지붕킥의 엔딩은 그저 이뤄질 수 없는 연인들의 관습적인 슬픔이 아니다. 지붕킥의 엔딩은 중층적이다. 그것은 시트콤이 갖는 현재성, 지금/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슬픔과 절망의 파편들을 불러온다. 그것은 많은 저널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88만원 세대의 좌절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트콤이 갖는 현실의 마취제 역할을 하는 판타지에 대한 자기 고백의 형식인 것이다. 그래서 지붕킥은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린다. 예술은 그 당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것은 희망을 위해서라도, 그 좌절과 슬픔을, 그 야만을 고발하는 것이다.

김병욱 시트콤이 많은 한계와 약점을 갖고 있더라도, 지붕킥의 엔딩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2010년 대한민국에서 지상파 시트콤을 소비한다는 행위의 정체에 대해 질문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지금 소비하는 것은 계급적인 자기 기만이 아닌가'라고 김병욱은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그리고 극을 마무리하면서 그것이 자기 기만이었다는 걸, "부끄럽고, 비참한" 현실이었다는 걸, 세경이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건 정말 슬프지만, 정확하고, 냉정한 현실에 대한 자기 고백이다.


5. 해리를 위하여
이제 드라마가 재현한 멜러나 코믹한 판타지가 아니라, 그 재현의 질료인 잔인한 현실로 다시 돌아오면, 남는 건 정음과 준혁이 아니라, 오히려 해리다. 해리는 성북동의 텅빈 고급 주택 속에 갇힌다. 해리를 구원할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 오현경은 해리를 탐욕스런 MB 시대의 아이로 키울 것이 뻔하고, 그렇게 서울대로 보내지는 것만이 일생일대의 목적으로 해리에게는 남겨질 것이다. 그렇게 해리에게는, 이 시대의 야만이 화려한 교양으로, 성공 지표로 치장된 숨막히는 위선만이 철저하게 강요될 것이다.

신애는 타히티로 떠났고, 어리숙한 아버지는 부자가 되기만을 꿈꾸고 있으며, 세속의 질서에 누구보다 충실한 어머니 현경은 해리에게 더 이상 세경 자매가 주었던 교훈을 되새겨 주지 않을 것이다. 새 할머니 김자옥은 권위적 훈육으로 해리를 통제할 것이며('훈련병 에피소드'), 할아버지 이순재는 처음부터 해리에겐 관심도 없다. 해리는 빵꾸똥꾸들과의 추억들을 잊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텅빈 성북동의 고급 주택. 대한민국의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공간 속에 해리가 갇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그 텅빈 거실 한 가운데서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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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이 빵꾸똥꾸야~"

이제 해리는 이 무시무시한 시트콤의 영원한 고아로 남겨진다.
그건 정말 슬픈 엔딩이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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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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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ltbottle 2010/03/22 17:27

    너무 좋은 글이네요. 특히 해리에 대한 이야기는 제 생각과도 너무 똑같아서 더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3/22 21:25

      긴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

  2. 비르투 2010/03/22 19:01

    세경의 고백 중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부분에서 감동했어요.
    지붕킥 안 봤는데 굉장히 많은 함의가 있는 시트콤이었군요. 현실을 잘 담았네요.

    주변 친구들에게 조금씩 들었는데, 지훈의 왔다갔다 애매한 사랑도 보기엔 짜증나지만 현실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해리 정말...ㅜㅜ
    옛날에 산골마을에 교육활동 가서 가난한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모습을 봤는데, 부잣집 아이들도 진정한 교육은 받지 못하는군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3/22 21:27

      엔딩의 메시지가 다소 일탈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 만큼 김병욱 시트콤의 현실타협적 부분들은 방송 내내 없지 않았고요.
      다만, 이 엔딩을 불편해하고, 실망스럽게 느끼는 많은 시청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로서는 대단히 용감한 시도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리는 지붕킥의 발견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는데요.
      의미있는 연기자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네요.

  3. 의리 2010/03/22 23:27

    재미있게만 보다가 이렇게 보니 또 한없이 무거워지는군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3/23 10:09

      아이코..;;; 그러셨군요..

  4. 이대팔 2010/03/23 00:18

    지붕킥 막방이 점점 다가오면서 김병욱PD가 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성향을 본다면 이번 지붕킥도 곱게 끝내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런 변태?스러운 결말을 내다니...

    아무튼 이글을 읽으니(요즘엔 긴~글을 읽을땐 체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끼곤 해요.-_-;;) 충격적인 결말에 대한 가라앉지 않았던 흥분이 조금은 정리 되는 기분이고 지붕킥을 보면서 그냥 웃으면서도 왠지 웃는게 웃는게 아닌 그 찜찜함이 뭔가 콕 찝어 명확하게 해소 되는듯 하고 어쩌면 지붕킥의 가장 큰 피해자? 해리에대해 이야기하신 부분은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뭔가 반전스러운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누구와 누구는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더래요'까지는 아니더라도 특히 이러한 시트콤이라고 불리는 형식의 드라마라는 것에 '해피엔딩'이라는 안전을 담보를 삼아 TV앞을 아무생각없이 ㅋㅋ거리며 뒹구는 너저분한?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는 어느날 갑자기 '훠어이, 애들은 가라'식으로 제거당한 듯한 섭섭한 기분을 감출수 없게하는 엔딩이기는 합니다. 또 시트콤이라는 것이 몇달만 지나면 거기에 나왔던 캐릭터까지 쉽게 잊기 마련인데 지붕킥의 경우 이러한 결말때문이라도 오랫동안 기억되기는 할 것 같습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3/23 10:14

      저는 나중에야 알았는데, 이번 결말에 대한 반대여론(?)이 굉장히 심하더고만요.
      저 개인적으론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저로선 다소 멀리 가긴 했지만, 그리고 그동안의 내러티브적 연계를 생각해보면, 다소 변칙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수용가능한 정도의 파격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좀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동안 차차로 실망스러웠던 기억들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 드는 마음에 드는 엔딩이었습니다. ㅡ.ㅡ;

      해리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다 하시니 참 다행입니다. :)

  5. .cat 2010/03/23 00:39

    제가 못 본 드라마라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걸 보고만 있었는데요.
    보통은 연애를 중심으로 엔딩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글들만 보다가 이런 해석을 보니까 신선하네요. :)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3/23 10:14

      신선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6. 하성태 2010/03/23 04:28

    와우, 도시인이란 드라마 다시 보고 싶네요. 무려 이윤택님이 쓴 극본이었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3/23 10:15

      왕년의 걸작 드라마인데요.
      지금 구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

  7. mahabanya 2010/03/23 07:46

    해리만 해리되었군요...

    perm. |  mod/del. |  reply.
  8. 뗏목지기™ 2010/03/23 11:0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신경림 님의 시를 함께 볼 수 있어서 괜히 콧날이 시큰거렸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3/23 11:59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9. icelui 2010/03/23 13:28

    어제 보고 리플 달려했더니 어느새 오늘은 이미 지난 글 같은 분위깁니다.

    정해놓고 보던 게 아니다보니 결말 얘기도 인터넷이 하도 시끄러워 접하게 됐고, 이대팔님 말씀따나 갑자기 다 된 밥 담긴 밥상을 걷어찬 거 아닌가 뭐 그런 느낌 정도만 받았었는데, 이 글을 보니 흥미롭습니다.

    특히 중산층이 ─ 시사잡지 같은 걸 보면 통계적으로 중산층에 속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한다던데, 아마 이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 희화화된 중산층을 보고 웃는다는 역설적 구조에 대한 지적이 인상적이고, 인용된 독백 부분도 ─ 아마 활자화되어서 더 그런 것이겠지만 ─ 언급하신 대로 드물게 직선적인 의식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이 시리즈를 다시 살펴볼 것까진 없겠지만, 언급된 질문 하나만큼은 시트콤을 떠나 풍자를 지향하는 모든 작품의 본질적 고민이겠기에 관심이 생깁니다. 우리가 자기기만적 소비행위를 하고 있다면, 작가(역기선 PD인가요?)도 그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인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장하여 상업적인 이용(시청률-광고?)을 꾀할 수도 있는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기만과 허위를 드러낼 수도 있을 거란 점도 흥미롭고, 특히 시트콤이란 점 때문에 쉽게 연상되는 상업적 속성을 더욱 아이러니컬한 기반으로 삼아 세련된 풍자와 비판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도 그렇습니다.

    까뮈가 '이방인'을 연출하는 데 그 결정적인 태양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하는 한 연출가에게 보냈다던 편지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정확한 건 아니고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포기할 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연출가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민노 씨 얘기에서 연상된 바, 김병욱PD가 그런 ─ 관성적 유희의 틀과 상식적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쟝르적 한계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또 이용해서, 탈정치화가 유행처럼 번진 이 시대에 대중의 비판적 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승화시키는, 그러면서도 본래의 유희적 성격을 잃지 않는 ─ 성장을 향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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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04:48

      중산층 혹은 '유사(?) 중산층'의 욕구는 이율배반적이라서, 물질적인 욕구, 현시적인 욕구의 차원에서는 대단히 동물적일만큼 즉각적이고,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야만적인데, 또 한편에서는 도덕적 각본의 관성에서 아직 자유롭지도 못한 미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 야만에 대해, 폭력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해리는 좀 다른 존재인데, 그 야만이 학습이라기 보다는 그저 아이같은 생생한 욕구 그 자체로 발현되는 존재죠. 하지만 그 욕망이 그저 '착함'을 만나고, '관계'를 만나 충격을 받았을 때, 좋은 방향성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경 자매'는 해리에게는 일종의 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현실에서 좌절해서 해리 곁을 떠나죠.

      세경 자매의 입장으로 보면 이 사회의 부조리라는 그 거대한 구조에 대한 공포감은 8,90년대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그 자매를 억누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령 '도시인'에서 음정희가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모험가' 혹은 '혁명가' 혹은 '정치 게릴라(?)'같은 공격적인 파격은 드러나지 않고, 그저 수동적인 비극의 마인드로 그 캐릭터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김병욱의 말처럼 진보의 에너지는 오히려 퇴행적으로 수그러들고 있다는 생각도 더불어 갖게 됩니다.

  10. black_H 2010/03/23 16:08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민노씨님의 글빨(?)을 보면 저는 큰 벽을 보고 있는것 같습니다 ㅜㅜ
    해리 부분은 상당히 흥미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엔딩을 보면서 처음엔 '응?'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정말 끝이라는것을 알아챘을땐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무서운 영화를 봐도 눈깜짝하지 않았던 저를 처음으로 무섭게 만든 시트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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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04:48

      별말씀을요. :)
      격려 말씀 고맙습니다.

  11. ccoon 2010/03/24 00:04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기만 해리의 미래도 그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릴 때 그토록 결혼하길 원했던 세호 결혼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박신혜양의 얼굴을 하고 여전히 입에서 빵꾸똥꾸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전 해리의 미래에 대해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헸습니다. 그 동안 남들에게 제대로 마음을 여는 법을 모르고 나누는 법과 부족함을 모르고 강한척 하기만 하던 아이가 신애가 떠남으로서 사회화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보이더군요. 사실 그 집안 식구들 모두가 그렇게 보여주었기에 긍정적으로 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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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04:49

      그 에피소드는 일종의 조크(?)라는 생각이 들어요. ^^
      CCOON님 말씀처럼 해리가 스스로의 인생을 좀더 긍정적으로 개척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의 먹이감으로 전락하지 말고 말이죠.

  12. 게으른늘보 2010/03/23 23:39

    잘 읽었습니다.
    중간에 나해미는 박해미를 잘못 쓰신 것으로 보입니다. 강유미와 투닥거리던 나혜미와 혼동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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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04:50

      아, 맞습니다. :)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13. 시청자일인 2010/03/24 01:50

    저는 이 결말을 싫어하는 시청자 중 한 명인데요. 이 결말을 두고 암울한 현실의 반영이라고 보는 시각이.. 불편해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식의 의미부여가 불편한 거죠. 세경이 지훈에 대한 짝사랑을 접고 그냥 외국으로 떠나버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계급적 좌절은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계급의 벽, 현 사회가 요구하는 끝없는 경쟁, 이런 거는 시트콤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는 주제였는데, 굳이 '죽음'을 골라야했나 싶어요. 그것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함께 죽음이 등장함으로써 마치 '세경의 소원'이 '죽음을 통해' 이뤄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죠. 어떤 분들은 '세경에게는 해피엔딩이다'라며 위안을 삼으려고도 하시던데, 전 그게 솔직히 정말 많이 싫어요. 혹은 민노씨님이 쓰신 것처럼 '계급적인 자기 기만'을 까발리기 위해서였다면, 그 역시 '세경의 죽음'을 '계급적 자기 기만을 깨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거라고 생각하구요. 개인적인 이유들로 세경이라는 캐릭터에게 공감을 많이 했었는데요. 저에게도 마지막 장면처럼 '그냥 지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던 순간이 있었죠. 살아온 날들도 힘들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힘들 것 같아서, 잠시나마 느낀 평온이 너무 달콤해 그냥 그 순간 죽었으면 하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그 이후로도 죽음이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살아온 저에게는... 굉장히 불쾌한 결말이었습니다. 가난한 집 소녀는 주인집 아들에 대한 짝사랑에 목숨을 걸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참 자존심이 상하더군요. 이 결말이 싫다는 여러 얘기가 있지만, 저 같은 입장은 들리지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덧글 달아봅니다. 결국은 비극적 세계관을 드러내기 위해(혹은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든) '가난한 소녀'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대상화되었다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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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04:53

      그러셨군요. :)
      그 아쉬움에는 마음으로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해석은 누구에게나 자유이고, 또 그런 자유로운 해석을 통해 대화가 이어진다면, 그것이 지상파 시트콤에 불과하지만, 이런 대중문화 텍스트의 위대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세경에게 이 마지막 엔딩이 해피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세경은 아직 많은 것들을 하고 싶은 꿈많은 젊은이잖아요.
      이제 막 소녀에서 벗어나 공부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려 우정도 쌓고, 또 연애도 하고 싶은 그 아이에게 멈춰진 시간은 그 아이를 억누르는 거대한 사회의 무게일 뿐이지, 세경의 판타지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소녀를 대상으로 이용했다기 보다는 그 상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야만을 좀더 냉정하게 비추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14. Paperback 2010/03/24 10:42

    글 너무 잘봤습니다. 공감가는 것도 많구요.
    다만 몇가지만 반론을 제기하자면, 현경이 정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서울대를 신봉해서가 아니라, 정음에게 인간적인 배신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국적을 막론하고, 이런 상황에서 쉽게 용서를 베푸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학벌에 얽매이든, 신경쓰지 않던 어쨌든 정음은 현경을 속인거니까요.
    그리고 오히려 현경은 학벌이라는 문제에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요? 현경의 아들과 딸은 둘다 반에서 꼴등을 도맡는 학생들입니다. 만약 현경이 학벌에 집착하는 성격이라면, 세호는 집에 놀러오지도 못할거고, 스파르타식 과외 선생님이 두명의 자식을 집중 마크하겠죠. 제가 볼 때 현경이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그저 꼴찌만 면하고, 졸업-대학-취직-결혼 이라는 주류권의 노선을 따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 노선을 그저 따른 자신과 보석은 아버지의 부를 토대로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 결말이 그렇게까지 비관적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참 많이 보여주었지만, 반대로 밝은 모습도 보여주었으니까요. 해리와 준혁은 분명 성장했고, 젊은이들은 이 무거운 현실에서도 꿈을 향해 달려가고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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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11:08

      고맙습니다. :)
      해석은 자유이고, 어떤 하나가 옳고, 그와 반하는 해석이 틀리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말씀주신 바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5. 슈삐 2010/03/24 14:17

    이 시트콤을 지속적으로는 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만, 어쩌다가 마지막회를 보게 되었지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 해독이 되는군요^^; 여러가지 궁금증이 풀렸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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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20:11

      별말씀을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6. 다시 시청자 일인 2010/03/24 16:36

    만약 이 시트콤이 정말 우리사회의 야만성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더라면 전 전혀 불만을 갖지 않았을 겁니다. 민노씨님께서는 이 결말이 세경의 판타지의 구현이 아니라고 보셨는데요. 밑에 링크 기사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감독 인터뷰도요. "세경인 이렇게 불쌍한 애다", "감독이 세경에게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선물이 죽음" 이렇게 언급하고 있죠.

    저는 이 기사들을 보며 이 결말이 야만성을 냉정하게 보여줬다기 보다는 이 사회의 야만성 앞에서 양심에 찔려하는 부르주아들의 자기 위안적 신파가 되었다고 더욱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세경이 불쌍해 죽겠다는 그들의 시선이 불쾌합니다. 제가 세경에게 감정이입하기 때문이겠죠. 저 같은 이들을 위한 선물이라는데 저는 일순간에 선물도 제대로 못 받아주는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많이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지금 제가 느끼는 불쾌함은 감독과 제작진에 대한 것이지 민노씨님이 위에 쓰신 글처럼 해석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여전히 제 자신이 대상화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대상화되는 것이 싫기에 최대한 제 목소리를 내보려하는 것입니다. 그래봤자 미디어라는 권력을 가진 감독에 비해서는 제대로된 울림 하나 갖지 못할 외침이지만 말입니다.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 ··· 83902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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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4 20:13

      아닙니다.
      흥분할 수도 있죠.
      다만 텍스트 해석의 자율성을 존중하신다면 해석의 다양성도 존중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의 정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그 텍스트의 의미를 풍성하게 하고, 서로간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해석의 궁극적인 의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논평에는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17. 아는 만큼 보인다. 2010/03/24 22:41

    이런 말이 있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은 다시 봐도 참 허무합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회의 주제는 그야말로 "이별"이었으니까요.
    이런 결말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시청자(외국도 마찬가지겠지만)들은 황당할테고, 허망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게 하나 있는데요. 이번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는 즐거운 소재로만 채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가끔가다 터지는 슬픔의 소재들은 기쁨의 소재와 뒤섞여 그 슬픔을 배가 시킨거죠.
    일례로, 봉실장이 짤리던 날 밤 정보석씨가 봉실장과 함께 성당에 들어가 죄를 용서해달라고 뉘우치죠. 지붕뚫고 하이킥은 평범한 시트콤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시트콤이란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겁니다.
    현실세계에서(물론 현실을 보려고 시트콤을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일어날 법한 일들이 지붕뚫고 하이킥에 녹아들었고, 우리의 현실은 지금 녹녹치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걸 대변해 주는 것이겠죠.
    현실이 모두 헤피엔딩이라면, 이번 지붕뚫고 하이킥의 허무엔딩을 백번 욕해도 온당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모두 헤피엔딩만 있는게 아닙니다.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라는걸 상기해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햄버거 먹고 숨막혀 죽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장렬히 전쟁터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남을 위해 몸을 던졌다가 죽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편안히 잠을 자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허무주의 혹은 허무엔딩이 아닌, 어쩌면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일상들 중의 하나인거죠.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언제 죽느냐, 어떻게 죽느냐가 다를 뿐이죠.
    지붕뚫고 하이킥의 허무한 세드엔딩처럼, 사람의 삶도 그 엔딩은 허무한 세드엔딩일 뿐이죠. 언제, 어떻게 엔딩이 오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차라리 해피엔딩보다는 두고두고 되뇌일 수 있는 세드엔딩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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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6 18:20

      주신 논평에 깊이 공감합니다.
      지붕킥 애청자셨던 모양입니다.

    • 제목만 보면 2010/03/27 21:10

      몰라서 죄송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대다수 시청자들은
      아마 감독보다 현실과 세상을 더 잘 이해 하고 있을건데요.
      누구 말처럼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드는지

    • 민노씨 2010/03/28 08:35

      저야 모르는 것이 많아서 배우는 일도 참 좋겠다 싶습니다.. ^^
      물론 게을러서 열심히 배우고 있지는 못하지만요.

  18. montreal florist 2010/03/25 03:26

    마지막 대사가 맘에 드네여, 서정적인 시같기도 하구여. 그래도 죽는건 싫드라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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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6 18:20

      그렇고만요.. ^^;;

  19. 2010/03/27 21:14

    박신혜의 모습은 좀 실망이었어요.
    해리같은 카리스마가 없어요.
    침대 시트를 정리하는둥 여성적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구요.
    해리 정도 되면 한가닥 하는 여장부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하이킥 결말에 논란이 이는건
    하이킥을 관통해온 정서와 일관성과 개연성이 부족한점
    세경을 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감독이
    세경에게 신의 권력을 행사한 점입니다.
    어쩌면 시트콤 시청자들도 같은 불쾌감을 느낀거죠.
    게다가 뭔가 있어 보이며 무지한 대중을 탓하는듯한 감독의 해명과 평론과 옹호글들...
    이런 세상의 소통의 부재는 단지 불편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자각이고 미학이고 나발이고
    세경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죽어버리fk는 건가 뭔가
    게다가 지훈의 난데 없는 자각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훈은 결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을겁니다.
    선심쓰듯 준혁을 위해 키스하고
    마치 이기심을 위해 지훈을 데려가 버린듯한 결말로
    요부설 귀신설까지 나도는 판이지만
    그런 대중보단 감독의 여성관이 더 의심스럽네요.
    계급을 강조 하는 감독의 작품엔
    진정한 노동 계급과 여성과 인간과 그리고 시청자에 대한 성찰과 애정이 없어요.
    가난을 계급을 글로 익혔는지?
    그러니 강남 좌파니 뭐니 하는 말도 생기지요.
    아니 그는 자신이 염세주의자라고 밝혔다고 하더군요.
    암튼 아무려면 감독보단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그리고 젊은 여성들 자신이
    그들의 꿈과 욕망과 현실을 더 잘 이해 합니다.
    설교는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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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8 08:33

      제 글이 설교처럼 느껴지셨다면 그것은 제 의도가 아닙니다. :)
      이 글은 그저 하나의 해석이고, 또 소박한 감상문에 불과합니다.
      어느 하나의 정답이 강요되는 것도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20. 강아지 2010/03/30 00:59

    대략 100% 동감 ^^
    꺄악 하고 웃으면서도 어딘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고, 통쾌하기도 했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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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30 18:33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1. Egoing 2010/04/03 18:16

    저는 하이킥을 안 봐서 이번글은 넘기려 했는데요. 마지막에 신경림 선생님의 시를 속의로 낭독하면서 참 먹먹한 감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스팩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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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4/06 11:08

      아주 쓸쓸한 스펙터클이겠네요.
      너무 쓸쓸해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스펙터클.

  22. 時雨 2010/04/21 23:28

    작성된지 좀 지났지만 댓글 달아봅니다.
    전 하이킥-거침없이 포함-을 잘 보진 않아서 극이 어떤 식으로 흘러 가고
    무엇을 그려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띄엄띄엄 보는 저로서는 주인공 넷 파악하기도 어려워서
    주변 인물들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사실 전 부유층에 대한 반발심이랄까
    그 배경에 위화감을 느껴서인지
    가까이 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준혁이나 세경이 짝사랑의 대상을 물끄러미 보는 장면은 좋았지만요
    흔히 생각하는 시트콤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지붕킥의 결말은
    좀 의외라고 할 만한 내용이긴 했지만 그렇게 이율배반인가 싶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게 시트콤마저 새드엔딩이라고 하면 누가 보겠냐고 하는데
    시트콤이라 해도 어차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릴 뿐인 걸요
    웃고 즐길 수 있는 걸 찾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배신감을 느끼게 할만하지만
    그렇다고 판에 박힌 무언가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건 바람직하진 않다고 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극의 진행과 연출에 제약을 주지 않는 게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고 보여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노씨 글을 보고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박해미와 오현경에 초점을 맞춘 게 마음에 듭니다. 저로선 전혀 생각지 못했네요.
    [+]나해미가 하나 더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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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4/22 13:17

      이 오래된 글에도 댓글을 주셨네요. :)

      나해미가 하나 더 있나요?
      찾아서 수정하겠습니다. ^ ^;

      추.
      "들떠 있던 마음"이란 건 최근에 그럴만한 일이 계셨었나요?
      문득 궁금해서요..
      다음에 혹시 오시면 왜 마음이 들떠 있으셨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3. 時雨 2010/04/22 22:23

    음...여기다 달아야 할려나..
    별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오랜만에 즐거운 산책을 했습니다. 반가운 사람과 통화도 하고.
    원래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한동안 안 좋은 소식들 때문에 우울했었거든요.
    단순히 기분상의 문제로만 그친다면 좀 나을 텐데
    저 같은 경우는 그게 자기에의 부정으로 확산되는지라 반쯤은 패닉 상태였지요.
    그러다 며칠 전, 그래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가벼워졌다고나 할까요.
    싱겁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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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4/22 23:10

      네, 여기에 다시는 거 맞습니다.
      다시 와주셨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

      그런 미묘한 감정의 기복을 겪으셨군요.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왠지 그 기분을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시 찾아주시고, 엉뚱한 질문에 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4. 희동네 2012/07/20 19:52

    이미지만 남아있어 짧은 기억력덕분에...그래도 엔딩은 안잊을듯 하네. 네 글덕분에 더욱더. 가난하다고 왜 모르겠어...고맙네 감동주어서.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2/07/21 16:46

      그래.
      그리고 송팀장한테도 빨랑 댓글 달라고 전해줘. ㅎㅎ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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