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와 시골우파 : 아틸라 인터뷰

2010/01/21 00:40
* 강남좌파 에서 이어지는 글.

내일 위클리경향과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왜 나같은 사람과 인터뷰 하려는지에 좀 의문이다.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다. 물론 그 진심에는 허명에 대한 유치한 공명심과 이에 대한 경계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나는 참 뼛속까지 속물이다. 이런 가벼운 인터뷰 요청, 혹은 이런 저런 곳에서의 원고 요청 등을 접하면, 물론 반가움이 앞서지만, 또 한편으로 내 블로깅이 뭔가  '의식 있어 보인다'는 삘, 그런 식 허상을 의도했나 스스로 반성 비스무리한 생각도 해보고, 그런 이미지 메이킹에 아주 실패하지는 않았구나 싶은 마케터 같은 생각도 해보고, 한편으론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접근 방식이 역시나 '우연한' 점조직 형태인건가?(주로 협소한 인맥 등을 통해 소개받는 그런 방식) 생각도 해봤다. 일전에 역시 위클리경향에서 했던 짧은 전화 인터뷰 인연인가 이런 생각도 든다.  주간지 인터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런 쓸데없는 상념을 늘어놓나 싶은 생각도 든다.

지난 금요일 심상정과의 만남, 지난 연말 주낙현 신부와의 만남. 그 후기들은 꼭 쓰고 싶은데, 어쩐지 마음이 더 가는 주제들에 대해선, 그렇게 더 조심스러운 마음, 혹은 애정 때문에 글이 많이 늦어지거나, 아예 못쓰기도 한다. 참 바보 같다.

각설하고, 낮에 전화통화로 간략한 사전조율 하면서 궁금한 걸 물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인터뷰인가? 담당 기자가 전해준 키워드는 '강남좌파' '라이프 스타일' '88만원세대' '젊은 층이 바라보는 정치와 사회' '새로운 진보의 모습' 이런 정도다. 그런데 조금 전 우연히 아틸라에게 전화가 왔다. 겸사겸사 내일 인터뷰 주제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게이터로그의 아거와 함께 아틸라는 내 블로깅 역사를 통털어 가장 큰 영향을 준 블로거 가운데 한명이다. 내일 인터뷰에 큰 참조가 된 것 같다.

* 이하 아틸라가 전해준 의견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괄호는 내 질문이고, 나머지 문장들은 내가 재구성한 아틸라의 답변이다. 부실한 기억력에 의해 본의 아니게 왜곡된 부분이 없지 않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1. (강남좌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당신은 강남좌파라는 아이콘에 부합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 생각이 궁금하다.)  이것은 일단은 문화 현상으로서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다. 다만 이 '강남좌파'라는 게 실체가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2. (공감한다. 내가 생각하는 강남좌파도 돈 잘 벌고, 비판적인 사회의식을 가진 사람 정도의 막연한 '이미지'다. 이게 정말 개념규정이 명확하게 가능한 건지 회의적이다) 스스로 우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우파도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4대강사업, 세종시 문제, 최근 사법부에 대한 공격 등은 합리적 우파 내부에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행동들이다. 이들이 상식적인 우파, 혹은 리버럴들의 설 자리를 밀어내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3. (흥미로운 관점이다) 대한민국 우파의 편협함이 합리적 우파의 입지를 점점 더 좁게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리버럴'도 '좌파'인 것처럼 보지 않나? 이런 점이 강남좌파라는 이미지와 연계된 것 같다. 최근 어떤 목사가 '파랑'(우파)과 '빨강'(좌파)을 섞으면 보라색인데, 그건 빨강과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시사점이 있다.

4. (좀더 이야기해달라)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선에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이런 '강남좌파' 성향도 한 몫 한 것 같다. 내 친구들 중에 이런 강남좌파에 속하다고 볼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노무현을 선택한 것도 사실이다.

5. (노무현 사례도 있지만, 이명박 사례도 있지 않나. 지난 대선과 총선은 계급 투표의 성격도 있지만, 거기에 반하는 지역 투표의 성격도 크다. 특히 경상도에 사는 나이 많은 세대들은 '그냥' 한나라당 찍는 것 같다.) 왜 "시골우파"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후기 : 이 문제는 강남좌파의 정반대 지점에서 '가난한 우파'의 문제와 연계되는 것 같다.)

6. (강남좌파는 실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까) 386들이 기존 사회에서 밀려난 뒤에 간 곳이 상징적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대치동으로 가서, 학생운동 조직마인드로 과외산업을 키워냈다. 그네들 말을 직접 들어보면 학부모와 상담하면서 밥벌이로 사교육 컨설팅을 하지만, 자기들 자식은 과외안시킨다는 친구들도 있다.

7. (참 재미있는 지적이다)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말 있지 않나.. 그게...

8.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요즘은 '부동산이 계급이고, 부동산에 바탕해 투표'한다는 '부동산 선거'라는 말도 생긴 것 같다. 시민운동, 사회운동이라는 적극적 변혁이 아닌, 소극적인 선거 민주주의라는 관점에 과연 강남좌파는 자신의 계층 계급적 기반-존재-에 반하는 의식적인 투표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가능성은 있다.

9. (강남좌파와 386이 붐을 일으킨 과외산업의 상관관계가 흥미롭다) 우파에게도 공평하지 않은, 혹은 상식적 우파에게도 설득력을 상실한 MB류 우파들은 노무현에게 보여줬던 386의 집단의식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다.

10. (우파들이 '상징'을 다루는 관리능력에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 같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진보신당 심상정을 만났다. 소위 우리나라 진보정치계에게 '강남좌파'라는 현상은 기회가 된다고 보나) 그렇다.

.... 이상 괄호는 내 질문을 재구성, 나머지는 아틸라의 답변을 재구성한 것이다.


* 짧은 정리 : 아틸라와의 인터뷰를 짧게 정리해본다.
1. 강남좌파는 문화현상이지, 그 구체적인 실체를 개념 규정하기는 대단히 힘듦.
2. 노무현 넥타이 부대 사례를 강남좌파로 직접 연결짓기는 건 좀더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할 듯. 다만 역사적으로 오히려 강남좌파적 현상은 과거에 있었던 현상의 반복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할 수는 있을 듯.
3. 긍정적인 해석 : 존재와 의식의 사이의 균열 혹은 긴장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의식화의 가능성.  
4. 부정적인 해석 : 결국 현 시스템을 만들어낸 운동의 방향성을 비관적으로 판단하면, 피상적이고, 과시적인 문화가 새롭게 자신들의 사회적 부채의식을 합리화시키고, 알리바이를 제공해주는 (지적) 악세사리로 머물 수 있는 가능성도 상당. 이른바 내가 주로 쓰는 표현을 빌자면, '지적 된장질'. 혹은 '이중사고에 의한 자기 합리화. 
5. 최소한 진보정치권에선 이런 현상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주목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어 보임.

* 이 글은 강남좌파와 선거혁명 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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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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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uenlive 2010/01/21 01:12

    '강남좌파'란 것이 존재하는 걸까요?
    아니면, (아마도 소수의) 가졌지만 의식이 있는 사람들을 굳이 '강남좌파'라는 단어로 규정짓는 걸까요?
    아니, 막연히 그런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는 꿈이 만든 허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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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1 01:21

      오늘 블루님께도 '강남좌파'에 대한 조언 들었는데, 이렇게 찾아주셔서 댓글 주시니 더 반갑습니다. : )
      저로선 어떤 문화적 현상, 문화 코드에 대해 좀 정치적인 관점으로 접근한 (아직은 개념짓기 힘든) 용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참 아리까리하네요...

      추.
      로딩 장애가 생겨서... ㅡ.ㅡ;;;
      페이지 한번 여는데 40초가 걸리네요... 이게 뭔 원인인지..;;;;
      일단 호스팅 업체에 문의한 상태인데, 포스팅해서 독자들께 조언을 구할까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 로딩장애를 딛고 이렇게 논평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 ikechoi 2010/01/21 01:44

    잘 읽었습니다. ㅎㅎ

    결국 강남 좌파란 기득권을 가진 비판적 성향*만* 있는 소극적 좌파와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한 대치동 386학원 선생들의 문화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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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1 02:04

      그렇게 손쉽게 단정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 ^
      모든 현상에 빛과 그늘이 있듯이, 이 문제도 여러가지 관점에 따라 좀더 심각한 구조적 분열의 징후로, 혹은 그저 가벼운 문화산업 마케팅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ㄱ. 최소한의 상식이 부재하는 통치권력의 비합리성
      ㄴ. 욕구의 피상적 과시가 관성화된 문화구조
      ㄷ. 그런 환경 속에서 존재와 의식이 서로 자연스럽게 부합하지 못하고, 역전되는 현상(강남좌파의 반대 현상으로서의 시골우파)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 ikechoi 2010/01/23 02:36

      사실, 아티랄님이 하신 이야기 중 6번 항목에서 뿜을 뻔 했습니다. 이 항목이 민노씨가 적시하신 문제에 ㄹ) 항목으로 추가 되어야 하는 것에 한표 던집니다.

      대한민국의 큰 해악 중 하나인 '과외'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식은 과외를 안시킨다. 이런걸 이율배반이라고 해야 겠죠?

      행동과는 별개로, 살아가면서 차츰 깨어나는 강남좌파와 깨어있다 점점 쪼그라드는 강남좌파.

  3. 아거 2010/01/21 10:24

    민노씨는 interviewee가 될게 아니라 인터뷰어가 되는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 ^


    아틸라님과 전화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이렇게 빠르고 깔끔하게 정리해 내는 능력, 참 대단합니다.

    민노씨는 영화작가보다는 기자로 더 뛰어난 자질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나리오는 아직 안봐서 판단 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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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2 18:18

      아틸라님 말씀을 그저 요약정리(?)한 것에 불과한데요.
      아거님께 덕담(?)을 들으니 기분 좋습니다. : )

  4. devenir 2010/01/21 10:56

    강남좌파라니까 오래전에 읽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http://www.arpnet.it/chaos/barbrook.htm)라는 글이 금방 떠오르네요. 맥락은 서로 조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적 경제+히피적 자유주의가 낳은 독특한 가치체계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뜻하지 않게 (뭔가 삐딱하다는 의미에서?) 좌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실 서구적인 관점에서는 리버럴일텐데 워낙 각박한 풍토에서 레프트(의 한 변종이)라고 칭해진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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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2 18:21

      아주 공감합니다.
      기본적으론 우리나라에 최소한의 합리적 보수 혹은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보수가 바로 서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크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좌파'라는 상징이 아주 느슨한 유행(혹은 악의적 상징조직의 대상으로)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요. : )

  5. Digitalcowboy 2010/01/21 17:45

    아틸라 님의 답변 중 "학생운동 조직마인드로 과외산업을 키워냈다"는 말은 뉴욕타임즈 기사Professor Is a Label That Leans to the Left - http://nyti.ms/6oS4tc 와 비슷한 맥락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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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2 18:23

      논평 고맙습니다. : )
      그나저나 카우보이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올 새해 늘 건강하시고, 행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6. 필로스 2010/01/21 19:16

    재미있는 주제네요. 물적토대(존재)와 관계없이 의식만 빨갱이인 사람을 부르는 말인가요?^^
    아거님 말씀처럼 민노씨는 정말 기자하면 잘 할 것 같습니다. 적절한 매체를 찾아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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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2 18:26

      ㅎㅎㅎ
      "의식만 빨갱이" ㅋㅋ

      제가 찾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요(천성이 게을러서리...).
      아시는 매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시죠. : )

  7. mu 2010/01/24 09:52

    트랙백 안돼 수동으로 겁니다.
    시골우파의 심리: http://4edu.tistory.com/549
    ("강남좌파와 아이폰" 속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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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6 22:22

      답글을 깜박했었네요. : )
      글은 자알~~ 읽었습니다.

  8. 별마 2010/01/26 21:14

    일련의 시리즈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읽다가 느낀건대 조선일보가 올해 벽두에 시리즈물로
    기획했던 기사들의 주인공 'G세대'들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뭐 저는 G세대가 실체적인 무엇이라기 보다는
    조선일보가 바라는 '새로운 젊은이상(像)'이라는 느낌이지만요.

    이전 세대가 '경제에 대한 의식'을 경험에서 강요받았다면
    뭐랄까요 '경제에 대한 의식'이 마치 선천적인 것마냥 갖고있는 것이
    조선일보가 말하는 'G세대'의 특징이라고 보입니다.
    그 위에서 '관용'이니 '도전'이니 하는 애기를 한다고 할까요.

    이러한 G세대라는 '상'이나 주인장님께서 말씀하신 강남좌파라는 '상'이
    '지적 악세사리'로써 사회의식을 전용하는 무리들을 형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는 있었는데
    주인장님처럼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없었던 거 같네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횡설수설한 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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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26 22:25

      아, 조선에서 그런 기획 연재물을 기사로 보낸바 있군요. : )
      유사한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별마님께서 말씀하신 그 G세대인것 같네요.

      조선의 그 연재는 현실을 움직이는 힘으로서, 현실과 연계하면서도 또 현실의 실제와는 유리된 '조직(조작)된 말의 힘' 의식적 담론작용, 상징조작의 시도가 없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횡설수설이라뇨.. ^ ^
      논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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